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이집트 (문단 편집) == 의복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95e9e10161343a9d56fe5ecb0c21445.jpg|width=2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067a0e899339ac2f8ea4e78a6df0e6a2.jpg|width=379]]}}}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66951db7be0442b529c884c51d992ac.jpg|width=380]]}}} || 이집트인들은 사막 기후에 살았기에 헐렁한 킬트나 바람이 잘 통하는 옷들을 주로 입고 다녔다. 돈이 많지 않았던 평민 남성의 경우 기본적으로 허리에 로인클로스나 사각형의 천을 대충 두르고 허리띠를 매어 고정했다. 평민 여성은 상체의 가슴까지 가려야 했기에 롱 스커트와 비슷하게 생긴 잘록한 원피스를 걸쳤다. 이집트의 [[벽화]]를 분석한 결과 여성들이 입었던 옷들은 대개 하늘하늘한 옷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더운 날씨 탓에 어깨까지 옷이 트여 있었다. 부유한 여성들은 반투명한 [[리넨]]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썼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훨씬 보수적인 이집트 사회였기에 남성은 허리와 사타구니의 치부 정도만을 가리는 경우도 많았던 반면 여성의 옷은 대부분 최소 무릎 아래까지는 내려가 있었다. 부유한 남성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무릎까지 내려오는 킬트를 걸친 것은 동일했으나, 그 위에 헐거운 셔츠나 망토를 걸치는 등 나름대로 꾸미고 다녔다. 다만 아무리 화려하게 차려입는다고 해도 날씨가 워낙 더우니 옷을 겹겹이 껴입고 다니지는 않았고, 대신 보석류나 황금을 이용한 악세사리들을 착용했다. 고대 이집트 유물들 중 유난히 목걸이나 반지 등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것. 너무 더워서 제 몸을 꾸밀 수단으로 화려하지만 긴 옷보다는 악세사리류들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를 보면 고위 계급들은 하나같이 목에 넓은 칼라 모양의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이걸 '우셰크'라고 부른다. 주로 색칠한 돌 구슬이나 황금, 보석들로 만들었고 목 뒤로 끈을 묶어 연결해 달고 다녔다. 이집트인들은 우셰크를 하고 다니면 신들의 가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남자들은 모두 허리에 로인클로스를 입었는데, 왕족들이나 고위층들의 조각상을 보면 특이하게 로인클로스가 삼각형 모양으로 앞쪽에 툭 튀어나온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햇살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고대 이집트에서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여성들은 가슴을 드러내고 어깨끈으로 고정한 스커트나 린넨 천에 목둘레 선을 내고 양 옆 선을 앞으로 접어 허리띠를 맨 '칼라시리스'를 입었다. 바로 아래에 첫 번째 그림의 여성이 입은 게 칼라시리스다. 이 칼라시리스는 남성과 여성 모두 입을 수 있었다. 당장 위의 그림만 봐도 남자들이 비슷한 칼라시리스들을 입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우아한 느낌이 강해 여성들이 더 즐겨 입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c3fcb8e399f7801e07fca7840c7f06e.jpg|width=16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etwork_dress._2_breast_caps_and_2_strings_of_Mitra_beads._5th_Dynasty._From_burial_978_at_Qau_(Tjebu),_Egypt._The_Petrie_Museum_of_Egyptian_Archaeology,_London.jpg|width=16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fk5ujkaqi221.webp|width=218]]}}}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ettyImages-185738135-0703a0b2478b43b8ac03d568654384c9.jpg|width=513]]}}} || 제18왕조 시대에 들어서는 여성들의 옷이 파격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당시의 옷을 보면 천은 오직 허리 아래만을 가리고 있고, 상체 부분에는 얇은 끈 두 개가 어깨에서 내려와 가슴에 걸쳐진 후 허리 부분과 연결되어 고정되어 있었다. 현대의 가는 끈 [[비키니]]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편하다.[* [[하트셉수트(문명 온라인)]]의 게임 속 모습과 나름 비슷하다. 다만 게임이 다연령이라 옷에 어느 정도 규제가 들어간거고, 실제로는 더욱 노출이 심했을 가능성이 있다.] 상체 앞부분을 가리는 것이 가느다란 끈 2개밖에 없었기에 여자들은 가슴을 그대로 노출하고 다녔는데, 다만 [[유륜]]과 유두는 가리는 게 예의여서 끈에 캡을 달아 그 안에 간신히 넣어 가렸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속이 비치는 [[시스루]], [[망사]]를 입거나 헐벗고 다녔다면서 성적 판타지가 구현된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단 이집트 여성들이 안의 실루엣이 비치는 반투명한 옷감으로 옷을 지어입었던 건 맞다. 그리고 실제로 일부 여성들이 젖가슴이 그대로 드러나는 노출이 굉장히 심한 옷차림을 하고 다닌 것도 사실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집트는 워낙 더웠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벽화에서 묘사되듯이 이집트 무희들은 아예 벌거벗은 상태로 궁정에서 춤을 추기도 했고, 그 외에 망사로 만들어진 드레스나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허나 이는 오직 고위층들만 가능한 옷이었다. 주로 부유한 젊은 귀족 여성들 정도가 이렇게 얇은 옷을 입고 다녔고, 그럴 여유도 경제력도 없는 일반 평민들은 이런 옷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게다가 이집트에서는 여성들도 고된 육체 노동을 했기에 지나치게 얇은 옷을 입고 다니면 오히려 찢어지기에 딱 좋을 뿐이었다. 고대 벽화에도 이런 스타일의 옷을 입은 인물들을 보면 대개 신화의 여신이거나 왕족들이다. 여자 무희는 거의 옷을 걸치지 않았다. 기껏해봐야 젖가슴에서 발목가지 내려오는 얇고 하늘하늘거리는 흰색 리넨 천만을 입고 다닐 뿐이었다. 신왕국 시대에는 무희들의 의상이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성인 무용수들은 엉덩이에 벨트나 스카프 하나만 차고다녔고, 때로는 안이 그대로 투명하게 비치는 얇디얇은 옷을 입었다. 넓고 긴 투명한 망토를 입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도 오른쪽 가슴을 노출하는 기교를 부렸다. 무용수들은 팔찌와 리본, [[화환]]을 착용했다. 가슴에는 리본을 달았으며 향밀랍으로 만든 장신구를 썼다. 춤을 추며 체온이 올라가고 땀이 나면, 이 밀랍이 녹아내리면서 좋은 향을 냈다. 눈에는 짙은 아이라인을 그렸다. 무희들은 허벅지와 배에 다산과 출산의 신 [[베스]]의 문신을 새겼다. 무희들이 여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성 무희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짧은 머리를 하고 표준적인 남성복을 입었지만 남자들 역시 헐벗는 경우가 잦았다. 고왕국 시대에는 앞면이 둥근 앞치마를 두르기도 했다. 성인 남성 무희들은 목걸이나 사슬을 목에 걸었고, 소년 무희들은 발에 팔찌를 착용했다. 소품도 다양하게 사용해서 짧게 휘어진 막대나 지팡이를 이용해 춤을 추곤 했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ncient-egypt-dance-ph2.jpg|height=26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astime_in_Ancient_Egypt_Alma-Tadema_1864.jpg|height=260]]}}} || |||| '''{{{#A0522D 고대 이집트의 무희들}}}''' |||| 옷가지 말고도 자신을 꾸미는 데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집트인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가발을 착용하고 화장을 했다. 이집트에서는 모든 성인 남성들이 머리를 빡빡 밀었다. 그러나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어린아이들은 머리를 전부 밀지 않고 이마 옆쪽의 일부 부분은 남겨놓았다. 머리를 밀지 않은 부분을 길게 길러 땋아 꽁지머리처럼 하고 다녔는데, 이 머리는 성년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잘랐다. 주로 파라오의 아들들이나 귀족 자제들이 이러한 꽁지머리를 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성년식을 치르면 얄짤 없이 모든 머리털을 깔끔하게 밀어버린 후 대신 가발을 썼다. 이 가발은 보통 실제 인모에 야자수 섬유를 섞어 만들었으며, 컬을 많이 넣어 꼬불꼬불하게 파마한 머리처럼 만들었다. 이집트에서는 이 가발 위에 향료를 섞은 [[밀랍]]을 얹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 더운 날씨 때문에 밀랍이 녹아 가발 위로 흘러내리는데, 이 과정에서 향기가 퍼져나갔기 때문. 보통 파라오가 쓰고 있는 모자하면 생각나는 줄무늬가 들어간 두건은 '[[네메스]]'라고 부른다.[* [[투탕카멘의 가면]] 영향으로 보통 이집트 왕관하면 이쪽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두건을 머리에 씌운 뒤 띠를 둘러 고정했고, 두건을 양 갈래로 나누어 어깨로 늘어뜨렸으며 뒤쪽을 묶어 마무리했다. 띠의 앞쪽 이마 부분에는 [[코브라]] 모습을 한 여신 [[와제트]]와 [[독수리]] 모습을 한 여신 [[네크베트]]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장식했다. 여신 와제트는 하이집트의 수호신, 여신 네크베트는 상이집트의 수호신으로 이는 파라오가 상하 이집트를 모두 아우르는 대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성이 크다. 네메스 외에도 다양한 왕관들을 사용했다.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 데슈레트와 상이집트의 하얀 왕관 헤제트를 합쳐 만든 이중관 '프셴트'를 쓰기도 했으며 전시에는 '케프레시'라고 하는 독특한 모습의 푸른색 전투모를 착용했다. 앞에는 태양신의 상징 우라에우스가 장식되었으며 [[이집트 제2중간기|제2중간기]] 시절부터 사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파라오들이 들고 다니는 독특한 모습의 갈고리와 도리깨는 각각 '헤카'와 '네카카'라고 불렀는데, 원래 [[오시리스]]의 상징이었다. 갈고리는 왕권을 상징했고 도리깨는 풍요로움을 의미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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